보테가 베네타의 인트레치아토 위빙은 샤넬의 퀼팅과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과 함께 나란히 떠오르는 패션계의 가장 아이코닉한 디자인 기법의 하나다. 가죽을 엮어 위빙하는 이 세련된 기법은 1966년 베네토의 공방에서 시작되었는데, 가죽 가방의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보테가 베네타는 이 기법을 지위의 상징으로 변모시켰다.
카바트 토트백부터 조디백까지, 절제된 감각으로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이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의 가죽 디자인은 하이엔드 런웨이와 유명 아이콘의 스트리트 스타일 키워드로 트렌드에 앞장서고 있다.
소박한 시작
보테가의 노로고(No Logo) 철학은 브랜드 창립자 미켈레 타데이와 렌초 첸자로가 56년 전 밀라노 베테노에서 브랜드를 설립했을 때부터 고수한 원칙이다. 당시 베네토 지방의 재봉틀은 두꺼운 가죽을 가공할 만큼 튼튼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가느다란 양면 가죽끈을 직조로 엮는 ‘인트레치아토’ 기법이 고안된 것이다.
“당신의 이니셜만으로 충분할 때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라는 슬로건을 내건 보테가 베네타의 절제미는 고급스러움을 풍기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80년 영화 <아메리카 지골로>에서 인트레치아토 백을 든 유명 배우 로렌 허튼에 이어, 1985년에는 보테가 베네타를 주제로 앤디 워홀이 직접 제작한 단편영화가 공개되며 브랜드의 인지도는 점점 올라갔다. 인트레치아토 위빙의 가치는 이후 로고마니아(브랜드 로고가 눈에 띄게 반복되는 패션 디자인) 트렌드가 주춤했을 때 더욱 주목받았다.
구찌 그룹이 보테가 베네타를 인수할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토마스 마이어는 보테가 베네타의 노로고 개성을 살려 브랜드를 부활시켰다. 그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로고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품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브랜드의 본질에 다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드러운 나파 가죽, 시그니처 위빙 기법, 그리고 직조 과정만으로도 그 상표를 알 수 있는 가방 말입니다” 라고 밝혔다. 2006년 보테가 베네타는 보테가 베네타 장인학교(Scuola dei Maestri Pellettieri)를 설립하여 가죽 장인 육성과 인트레치아토 기법의 정교한 장인정신 계승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과장된 위빙
2018년, 다니엘 리는 32세의 젊은 나이에 토마스 마이어에 이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대세였던 것인지 그의 예술적 직관이었던 것인지, 인트레치아토 위빙을 미묘하게 확대해 재창조한 “인트레치오” 기법은 가죽 기반 제품의 유행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에서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위빙의 미학
위빙 기술은 일반적으로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분류되지만, 일부 가방은 실제로 미묘하게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짜인다. 우선, 카세트백은 파우치백보다 좀 더 단순한 직조 방식인 인터레이싱 기법을 사용한다. 카세트백은 가죽을 가로세로로 엮어 틈새가 적은 그리드를 형성하는 반면, 파우치백은 내부에 지그재그로 작은 칼집을 내어 가죽을 넣고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더욱 촘촘하고 정밀하게 짜인다.
외형뿐만 아니라, 위빙 기법은 그 방식에 따라 질감에도 영향을 준다. 파우치백의 촘촘한 짜임과 베이스 레이어 서포트는 가죽을 더욱 유연하게 구부러질 수 있는 가죽을 구현하는 반면, 카세트백은 내부 면은 가리고 외부 그레인 면만 노출하는 두 레이어를 연속적으로 붙여 만든 더 뻣뻣한 양면 가죽을 사용한다.
본질에 충실하기
2021년 초, 보테가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전부 삭제하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행보를 보였다.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한 시대 이전에 럭셔리 브랜드들이 익히 취했던 신비한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하는 전략으로서 기능했다. 엠마 스톤, 스칼렛 요한슨, 조지 클루니 등 몇몇 할리우드 배우들 또한 SNS를 사용하지 않지만, 뜻밖에 그런 부분이 그들을 더욱 세련되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보테가가 SNS에서 로그아웃했을지 몰라도 그 존재감은 여전했다. 인플루언서, 패션 블로거의 홍보와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브랜드 인지도는 더욱 올라갔다. SNS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고, 하물며 ‘좋아요’와 ‘공유’에서 얻은 세간의 주목으로 번창하는 패션 브랜드들이 늘어나는 세상에 보테가 베네타의 결정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의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디자인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그들의 행보는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 수 없다.